작가소개

Artists

최은선 작가 / CHOI EUN SUN

최 은 선 

CHOI EUN SUN

 



 

1977년에 전주에서 태어나 3살 때 서울로 이주해 살다가 현재는 순천에서 살고 있다.

 


 

대학로에서 공연 전문 사진가로 10년을 일하다 2009SI 그림책 학교를 졸업한 후 현재까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개인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 최은선은 즉흥적이면서 동시에 디테일한 본인만의 확고한 작업스타일을 크게 붓과 펜, 바느질 세가지 요소로 만들어낸다. 각각의 작품에는 서사와 스토리가 붙게 되는데, 주변의 특정 인물들과의 인상깊었던 에피소드를 일기의 형태로 입히거나 혹은 여러 인물들과 자아의 복합적인 가상인물 형태로 입혀가는게 흥미롭다. 

 

 


앨리스_
41×53cm_mixed media_2023

 

 

작가노트

 

10여년 전, 나는 엄마의 삶을 인형으로 만들어 첫 전시를 했다.

 

허나 정작 엄마는 아빠에게 매 맞던 과거를 드러내길 원치 않았고, 내가 바치는 찬가에 감격한 엄마를 바랐던 나는 몹시 화가 나 착한 딸을 그만하기로 했다. 그 후, 자식 두고 이혼한 죄를 지었다며 내 앞에서만 쪼그라드는 엄마에게 짜증을 있는 대로 퍼붓고 부러 엄마가 아플 곳을 찔러대며 마음껏 화를 쏟아냈다.

같이 산 시간보다 떨어져 산 시간이 길었던 우리 사이엔 이내 골이 생겼고 엄마는 오사카에서 나는 서울에서 그냥 각자의 삶을 살았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서로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소식도 끊고 관심도 끊은 채 지냈다.

그다음 해엔 미국과 소련처럼 어쩌다 통화해도 서로에게 서운해 냉랭했고 그다음 해엔 집에 찾아온 엄마에게 내가 모질게 굴어 아픈 다리를 끌고 이모네로 혼자 버스 타고 돌아가게 했다. 그다음 해엔 집 때문에 한국 들어온 엄마를 만나서 일 만 처리하고 밥 한끼 같이 안 하고 엄마 혼자 택시 태워 보냈다. 같이 탈 줄 알았던 엄마는 퉁명스럽게 잘가라며 택시 문을 닫는 나를 보며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엄마의 그런 표정은 처음 봐 순간 명치에 꾹 하고 얹혔다. 내가 얼마나 못되고 속 좁은 인간인지 엄마의 표정에 비쳐 보여 마음이 아팠다. 나는 그즈음 풀리긴커녕 엉키고 설켜 꼬일 대로 꼬인 내 삶의 모든 불행을 모두 엄마 탓으로 미뤄놓은 것도 모자라 괜한 분풀이까지 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곪아 터진 상처를 보일 용기가 없어 못나빠지게 괜한 엄마에게 골질이나 하며 악다구니를 쳐 마음을 달래려 했다.

미안한 마음에 사계절이 다 가도록 연락할까 말까 고민만 하다 환갑을 딸 전화도 없이 맞이하게 하는 건 진짜 아니다 싶었다. 암 환자로 시한부 선고도 걷어차고 뇌출혈로 죽을 고비도 날아 차버리고 살아남은 엄마가 환갑까지 도착할 줄 엄마도 나도 몰랐다. 두려운 마음에 그런 바람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는데 혼자 도착하게 하면 안 된다 싶어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떨리는 손으로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나 은선이. 환갑 축하해.”

하하하하하하하

엄마는 어색해하는 내 목소리를 시원한 웃음으로 날려버리며 답했다.

바보네. 환갑은 작년이야.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렇다. 음력 12월 용띠인 나는 항상 내 나이를 헷갈렸다. 회사에 다닌 적 없는 나는 항상 나이를 헷갈렸고 어쩌다 사람들이 나이를 물어도 대충 대답하는 버릇이 들어 나랑 딱 스무 살 차이나는 엄마 나이도 더불어 헷갈렸다.

! 그래? 그러게 왜 헷갈리게 낳아가지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냥 그렇게 우리는 서로 한참 웃었다. 우스갯소리를 좋아하는 엄마와 나는 전처럼 미주알고주알 자매처럼 한참 수다를 떨었고 그사이 팬 골에 새 살이 차올랐다.

 

그리고 그다음 해, 나는 내게 너무 버거웠던 서울을 두고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순천에 닿았다.

아는 사람 없이도 순천의 동천과 봉화산은 따뜻하고 넉넉한 품을 지니고 있어 나를 꼭 안아주었다. 먹고 사는 걱정은 여전했지만, 서울과 달리 시간도 사람도 천천히 흘러 다친 마음도 아물고 얼어붙은 마음도 언 손 녹듯 녹아 자리가 생겼다. 자리가 생겨난 곳에 꾹 참았던 눈물이 고여 버섯 같은 무언가 이끼 같은 무언가가 자라 마음속에 작은 숲이 생겼다.

 

맨날 발끝만 쳐다보고 버티듯 걷느라 숙어진 고개를 들어보니 그제야 보이고 들렸다. 계속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던, 모두 딸인 엄마들과 언니들.

순천에 와 이른 첫봄, 내 생일 아침에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에는 내 생일마다 엄마가 전화 하나 안 하나 벼르기만 했는데. 참 바보.

엄마, 낳아줘서 고마워.”

신이 난 내가 말하자 울컥한 목소리로 엄마가 말했다.

진짜?”

.”

낳아서 고생만 시켰는데.”

아냐. 진짜 고마워. 다음번에 태어나면 내가 엄마를 낳아줄게. 그땐 외할머니 대신 내가 엄마를 엄청 예뻐해 줄게.”

마흔둘 생일 아침, 수화기 너머 오사카에서 엄마가 울다가 웃었다.

 

 


 

- 202317일 비온다.

 

 

앨리스의 문_30 × 35cm_mixed media_2022

 

 

 

 

EXHIBITION


2010  3월 영국 캠브리지 Anglia Ruskin University 교류전

2011  8월 KT&G 상상마당 디자인스퀘어 초대 개인전 <mama>

2014  5월 카페톨릭스 한남 초대 개인전 <, 사랑의 기억>

2019  10월 대한항공 50주년 캠페인 광고 <파일럿을 꿈꾸는 소년에 대한 이야기’>

 


 

2020  11월 캐나다 아웃도어 광고 캠페인 <SIAYA-The Metamorphosis>

 


다른 듯 닮은, 언니와 나_
61 × 46cm_mixed media_2022



서평


작가 최은선은 우리 모두가 그랬듯이... 좋은 것만 받고 태어나지는 않았다. 우리 모두가 그랬듯이... 좋은 조건 속에서만 살지도 않았다. 눈물도 땀도 고통도 막막함도 우리만큼 많이 받고 많이 겪었다. 스무살 어린 시절부터 그녀를 봐았던 나는 그녀의 작업들도 계속 봐왔다. 꼼지락 꼼지락 외국의 뜨개질 인형책을 보고 따라 뜨던 때부터 천을 잘르고 꼬매 버릇처럼 정체 불명의 인형들을 마구 만들던 시간들... 그마저도 만들지 못하던 시절들...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데 터져나오지도 못해 기괴하고 검게 응축되어 나오던 엄마 인형들. 그 한편에는 한없이 화려하고 아름답고 화사한 인형들도 있었다. 아마 두려움과 분노 슬픔만으로는 생존자체가 불가능한 생명의 본령에 충실해 스스로를 살리고 북돋던 인형들이었을 것이다. 그 사이의 엄청난 갭은 한 사람의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작업은 늘 그녀의 상태이고 그녀의 마음이었다. 딱 그랬다. 그렇게 채곡 채곡 나이가 들었고 사랑이 들었고 손이 익었다. 그리고 이제 전시 딸들 애썼어. 사랑해가 만들어졌다. 눌리고 튀어나왔으나 당당한 딸들... 아름다운 꿈처럼 큰 두건을 쓴 딸들... 한껏 차려입었으나 웬지 헐벗은 느낌을 주는 딸들... 그녀들은 작가 최은선이고 친정엄마고 시어머니고 숙모고 선배언니고 시장에서 김밥싸주시던 아줌마고 돌던지던 후배고 욕하던 친구다. 자신과 그녀들 때문에 끌탕하던 최은선은 드디어 자신과 그녀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자신과 그녀들을 위해 잔치상을 차렸다. 심청이의 맹인 잔치상같은 상. 눈 먼 아버지뿐 아니라 모두의 눈을 뜨게 할 잔치상. 그러나 아직은 조촐한 상. 아직도 어설픈 상. 와서 즐겨주시기를.

 

그림책기획자 홍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