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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영 SHIN YOON YOUNG
우리 인생에는 잘 묶어두었다고 생각한 매듭이 풀리는 난관들이 등장하곤 한다.
예컨대 길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신발끈이 풀려 곤란했던 경험은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대개는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잠시 앉아 끈을 묶으면 되지만, 운이 좋지 않다면 풀린 끈에 걸려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도 한다.
작품 속 길고 꼿꼿한 끈들은, 삶 속에서 헤쳐 나아가야만 하는 생사고락, 즉 인간의 숙명인 셈이다. 이 때 직선 부분을 입체감이 느껴질 정도로 여러번 덧칠하였는데, 이는 삶의 난관이 주는 무게가 너무나도 버거워서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심정에 대한 공감의 표현이다.
바탕에 그려진 구슬들의 형태는 꼿꼿이 뻗은 직선의 형태와 선명하게 대비된다. 원형은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다.
모난 곳을 가질 수밖에 없는 다른 모든 도형들과 달리, 원은 모서리와 꼭짓점이 부재하는 유일한 도형이기 때문이다.
꺾이는 곳도, 뾰족한 곳도 없는 원의 형태는 직선의 강건함과 모서리의 날카로움에 상처받은 인간들에게 부드러운 위로를 건넨다.
옛말에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늘을 이상향으로 삼던 옛 선인들이 하늘을 둥근 모양으로 생각했던 것은 이와 같은 연유에서 기인한 것일 터이다.
형형색색의 원형 구슬들은 각자의 삶에서 이루고픈 아름다운 소망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구슬이라는 이상은 직선으로 표현된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잘 보이지 않기 일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이 구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삶에 대한 희망을 저버릴 필요는 없다.
이상에 가까워지기 위해 현실의 난관들을 극복해내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내면은 강인해지고, 성장하며,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형의 구슬들이 이따금 빽빽한 직선들을 뚫고 앞으로 나와 있는 것은, 이상에 대한 희망과 추구를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의 표현이다.
원형에 대한 나의 이러한 동경심은 꽃마리라는 꽃에 집약되어 나타난다.
꽃마리는 총 다섯 개의 원형 꽃잎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부분들이 합쳐진 전체의 모양 역시 원에 가까운 형태이다.
원형의 꽃잎들이 모여 원형의 꽃을 이루고, 또 이 꽃들이 모여 원형의 고리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이상향의 궁극인 것이다. 이곳에서 직선으로 표현되는 일체의 고통- 이를테면 현실의 미혹와 집착은 모두 소멸하고 푸르른 색조의 야생화 꽃마리만이 원형의 고리를 이루어 존재한다.
우리가 살아가야하는 현실에는 직선과 곡선의 희노애락이 필연적으로 공존한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으며,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만남과 삶과 빛의 존재만큼 그 건너편에는 걸려넘어질 수밖에 없는 직선들이 무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풀려버린 끈을 다시 리본으로 매듭지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먼 훗날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힘겹게 리본으로 묶어낸 인생의 끈들은, 지나고 나면 행복이라는 선물의 포장지에 불과하였음을.
학력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예술대학 미술학부 졸업